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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읽는 손가락

on 2016.03.15·by seacret

참고=반 고흐와 고갱의 유토피아/빈센트 반 고흐 내 영혼의 자서전
사진=반 고흐 인사이드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는 후기 인상파를 대표하는 화가다. 전도사로 일하던 고흐는 만 27세인 1880년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하던 고흐는 1886년부터 1888년까지 파리에 체류하며 새롭고 다양한 인상들에 노출됐다. 이 시기 그는 일본 우키요에에 영향을 받아 어두운 화풍이 주류였던 인상주의를 밝은 화풍으로 바꿨다. 이후 고흐는 아를에서 고갱과 9주간 공동생활을 하며 걸작들을 탄생시켰다.


노란 집
노란 집은 아를의 라마르탱 광장 2번지에 위치했다. 고흐는 이 건물에 있던 방 네 개를 빌려 아를의 삶을 시작했다. 오른쪽 건물 구석에 셔터가 내려 있는 방에서 고갱이 9주간 머물렀다.


고갱을 위한 자화상
아를의 노란 집에서 공동생활을 시작한 고흐와 고갱은 서로에게 자신의 자화상을 그려주며 우정을 쌓았다. ‘고갱을 위한 자화상’에서 고흐는 거의 빡빡 깎은 머리와 광대뼈가 튀어나온 몰골을 한 모습을 그렸다. 자신의 자화상에 깊은 우울을 담아냈다.


귀에 붕대를 맨 자화상
고갱은 고흐와의 공동생활이 지속될수록 그의 기벽에 질려버렸다. 술을 마신 뒤에 고흐의 모습은 괴상함 그 자체였다. 날이 갈수록 폭음이 심해지자, 고갱은 슈페네커라는 친구에게 몰래 편지를 써 아를을 떠날 구실을 찾았다. 고갱이 떠날 것을 눈치챈 고흐는 그에게 ‘살인자가 도주했다’는 문장을 신문에서 찢어 쥐여줬다. 이후 두 사람은 함께 저녁을 차려 먹고 산책에 나섰다. 하지만 산책길에 따라나섰던 고흐는 그 길로 노란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귓불을 자른다. 그리고 자른 귓불을 들고 라셸이라는 매춘부를 찾아 자신의 귀를 고갱에게 전해줄 것을 요구했다.
“육체적인 고통에 비례하여 영혼의 힘이 항상 따라왔습니다. 그 힘이 무너지면 저는 이곳에 존재할 이유가 없게 됩니다. 곧, 저의 자멸을 의미합니다.”
– 빈센트 반 고흐, 내 영혼의 자서전 중




반 고흐 인사이드: 빛과 음악의 축제
반 고흐가 남기고 간 130여년 전 명작들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조명한 미디어아트 전시가 문화역서울 284에서 오는 4월까지 열린다. 뉘넨, 파리, 아를, 생레미를 거쳐 오베르에 이르기까지 험난한 예술가로서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냈던 반 고흐의 발자취를 되짚어 볼 수 있는 기회다.